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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經典講解152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제24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남을 위해 보시한 복덕(福德)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마는 『금강경』의 도리를 깨우쳐 이룩한 지혜(智慧)와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어떠한 수로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유한과 무한의 차이인 것이고, 유위와 무위의 차이인 것입니다. 또한 유루와 무루의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인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갖고 있는 금강과 같이 영롱하게 빛나는 반야의 지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를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여시등칠보취 有人이 持用布施어든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유인 지용보시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사구게등.. 2013. 8. 26.
금강경 -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제23 청정(淸淨)한 마음은 바로 깨끗한 마음이고 훌륭하고 수승한 마음입니다. 따라서 매우 존귀한 마음입니다. 무엇이 가장 청정한 마음이겠습니까. 그것은 상을 떠나 보내고머무르지 않는 마음, 무상 무주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청정해진 마음으로 선(善)을 행합니다. 있는 그대로 없고 없는 그 즉시로 있는 텅 빈 마음으로 선법을 닦습니다. 물에 비친 달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선근을 심습니다. 또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덜어내어 모든 법이 평등해진 그 자리는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긴것은 긴것에 짧은 것은 짧은 것에 맡기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가 바로 보리심인 것입니다. 육도 만행(六度 萬行)을 했으되, 텅빈 마음으로 행하여 했음도, 하지 아니하였음도 다 떠나 보내면.. 2013. 8. 22.
금강경 -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22 일체법은 본래로 텅 비어 평등하고 청청합니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인 자리이므로 보리(菩提)는 달리 얻을 수도 없으며 얻을 것도 없습니다. 법(法)을 가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에 매인 것입니다. 가히 얻을 법이 없다고 하여야 바야흐로 해탈(解脫)을 얻었다 할 것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도를 남에게 줄 수 있다면 그 후손에게 주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일체법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작은 법도 얻은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진실로 부처님은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것입니다.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佛이 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는 수보리 백불언 세존 불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爲無所得耶니이다 佛言하사대 如.. 2013. 8. 16.
금강경 -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1 일체법(一切法)은 본래로 텅 비어 청정합니다. 설법(說法)이란 저 일체법을 깨달은 사람이 아직도 꿈 속에 남아 있는사람을 깨우기 위하여 팔만 사천 법문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의 설(說)은 능설(能說)을 줄인 것으로서 설법을 하는 입장입니다. 소설(所說)은 말해질 것으로서 설법되어지는 대상인 것입니다. 설과 소설이 다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즉 설명할 것도 없고 설명되어질 진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사람은 본래로 다 금강신(金剛身)이고, 본래로 다 금강반야지(金剛般若智)를 구족하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설법을 하고 또 설법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래가 설법을 했다고 한다면 여래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되고 심지어는 부처님을 비방(誹謗)하는 것이 됩니다.. 2013. 8. 10.
금강경 -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제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제20 모든 색신(色身)과 형상(形相)은 인연으로 엮어져 있으므로 참으로 구족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에 따른 모든 인식을 떠나 보내야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의 먼지와 때를 날려 버려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의 형색과 형상에다 인식까지 꽁꽁 잡혀 있다면 무량 공덕 생명인 반야는 드러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가 거룩하고 구족하다고 하여도 그것은 현상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인연이 다하고 나면 사대로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해 버리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없어져 버릴 색상(色相)에 마음을 붙이면 상주 불멸하는 참 여래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반야신(般若身)은 끝내 찾지 못할 것입니다.. 2013. 7. 31.
금강경 -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19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칠보를 가지고서 남을 위해 베풀었다고 하여도 '나는 이토록 훌륭한 일을 했다'하고 마음에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바로 함이 있는 유위복(有爲福)이 되고 또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 새어버릴 유루복(有漏福)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걸리거나 매임이 없이 무상(無相), 무주(無住)로 보시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청정(淸淨)하여 결코 새지 않을 것입니다. 새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은 없어지지 않아서 온 우주법계를 다 덮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법계에 있는 중생들과 한 몸으로 통해 남김없이 다 교화합니다. 진실로 우리의 성품은 함이 없고 복덕도 없음으로 해서 영원토록 할 수 있게 되고, 복덕도 실로 많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 2013. 7. 25.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3)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3) 그 때 노보살 떡장수는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스님 금강경 연구만 하지 마시고 용담(龍潭) 스님을 한 번 찾아 보시지요." 그래서 남방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용담 스님이 계시는 절을 찾아 들어 갔습니다. 노보살 떡장수에게서 혼이 났으면서도 아직도 학자적인 거만이나 아만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 노장이 보이는데 느낌이 용담 스님 같아 일부러 들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용담 용담 하더니, 못도 안 보이고 용도 안 보인다.(潭又不見 龍又不見)" "그대가 진정 용담에 왔네."하며 그 소리를 듣고도 용담 스님은 덕산 스님을 쾌히 받아 들였습니다. 함께 저녁 공양을 든 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뒤 밤이 깊어 덕산 스님은 객실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밖이 어두워서 덕산 스님.. 2013. 7. 19.
금강경 -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2)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2)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一恒河中所有沙하야 有如是沙等恒河어든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가 如是寧爲多不아 甚多니이다 시제항하소유사수불세계 여시영위다부 심다 世尊하 세존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한 항하강에 있는 모래수와 같이 이렇게 많은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강에 있는바 모래 수만큼의 불세계가 있다면 이는 얼마나 많음이 되겠느냐."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불세계(佛世界)란 한 부처님이 교화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교화할 수 있는 일불세계를 사바세계(娑婆世界)라 합니다. 저 길고 긴 항하강에 있는 모래 수 만큼의 많고 많은 항하에 있는 모든 모래 수 만큼이나 있다는 불세계는 너무나도 많을 .. 2013. 7. 13.
금강경 -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1)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제18(1)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은 뿌리이고 삼라만상은 전부 다 나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고 많은 불세계(佛世界)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은 모두 다 하나의 헛된 마음, 망념(妄念)으로부터 생겨 났습니다. 하나의 마음만 벗겨내면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동일 생명의 내면이 빛나게 됩니다. 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맑고 밝은 지혜의 눈으로 중생과 부처를 한 몸으로 볼 뿐입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동일(同一)하게 보는데 부처님이 갖추신 다섯 가지 눈이 필요하지 않을는지도 모릅니다. 또, 한 몸으로 본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그냥 그것 자체가 언제나 거기에 여여(如如)하게 있기에 과거(過去(로도, 현.. 2013. 7. 8.